공지·운영자 칼럼

칼럼

고도비만 78주, 치킨 냄새 앞에서 무엇이 달라졌나

· 조회 1

78주 동안 위고비와 마운자로를 맞고 40kg 가까이 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첫 장면으로 체중계 대신 치킨 상자를 놓고 싶다. 어느 저녁 아이들이 치킨을 시켰고, 거실까지 냄새가 퍼졌다. 갓 튀긴 치킨 냄새는 지금도 좋다. 상자를 열어 보니 내가 좋아하는 부위도 보였다.

78주 뒤의 저녁, 치킨 상자 앞
78주 뒤의 저녁, 치킨 상자 앞

한 조각 먹을까 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한 조각 먹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다음 날 병원에 가는 날이었고, 가면 체중을 재고 때가 맞으면 인바디도 잰다. 숫자가 조금이라도 잘 나오면 기분이 좋으니 오늘 저녁은 굳이 안 먹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그게 전부였다.

참느라 힘들지도 않았고,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짜증이 나지도 않았다. 냄새를 피하려고 다른 방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먹고 싶기는 했지만 안 먹기로 했고, 그러고 나니 더는 생각나지 않았다.

별것 아닌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정말 별것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아니었다.

예전의 나는 치킨 앞에서 늘 협상을 했다

평생 치킨 앞에서 이런 선택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다이어트를 할 때도 안 먹으려고는 했다. 내일 체중을 재야 하니까, 이번 주에 몇 kg은 빼야 하니까, 오늘 먹으면 지금까지 참은 게 아까우니까. 머리는 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몸이었다.

냄새는 계속 났고, 아이들이 한 조각씩 집어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조각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머릿속에서 협상이 벌어졌다. 오늘 점심을 적게 먹었으니까. 한 조각만 먹고 끝내면 되니까. 내일부터 다시 하면 되니까.

그러다 한 조각을 먹으면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쉬웠고, 세 번째부터는 이유도 필요 없었다. 배가 부르다고 끝나지도 않았다. 나는 배가 불러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터질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젓가락은 움직였고, 눈앞에 음식이 남아 있으면 손이 갔다.

그러고 나면 후회했다. 먹을 때는 좋았는데 다 먹고 나면 기분이 나빴고, 내일 아침 체중계에 올라갈 생각을 하면 벌써 짜증이 났다. 그래도 다음에 치킨을 시키면 똑같았다. 나는 그걸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참으면 독한 사람, 먹으면 약한 사람. 살을 빼는 데 성공하면 독한 사람이고, 다시 찌면 결국 풀어진 사람이었다.

그동안의 다이어트에서 음식은 늘 머릿속에 있었다.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일수록 더 생각났다. 옆에서 누가 치킨을 먹으면 냄새가 더 잘 나는 것 같았고, 나는 못 먹는데 가족들이 맛있는 것을 시켜 먹으면 괜히 짜증이 나기도 했다.

이를 악물지도, 물을 들이켜지도 않았다

그날 저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치킨을 먹었고 나는 옆에 있었다. 냄새도 맡았고 먹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먹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참은 게 아니었다. 물을 들이켜 배를 채우지도 않았고, '나는 할 수 있다' 같은 말을 속으로 되뇌지도 않았다.

그냥 안 먹었다. 그러고는 다른 일을 했다.

돌아보면 약을 맞고 몇 달이 지나면서부터 이런 저녁이 늘었다. 가족들이 족발을 시킨다고 해도 별생각이 없었고, 누가 "먹을래?" 하고 물으면 "아니, 안 먹을래"로 끝이었다. 그 대답을 하기 위해 힘을 줄 필요가 없었다.

한참 뒤에야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럴 수 있었지?

내가 더 독해진 건 아니다. 지금의 나는 예전에 살을 뺄 때보다 훨씬 느슨하게 산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먹고, 가족들과 외식도 한다. 아침마다 몇 시간씩 운동하지도 않고, 먹으면 안 되는 음식 목록을 만들어 두지도 않았다.

그런데 예전에는 안 되던 일이 지금은 된다. 먹고 싶은데 안 먹을 수 있다. 먹기 시작해도 그만 먹을 수 있다. 그리고 가끔은 먹는 것 자체를 잊어버린다.

40kg이라는 숫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

76주 전 내 몸무게는 125kg 정도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약 40kg이 줄었다. 큰 숫자다. 그런데 그동안 내게 일어난 일을 40kg으로만 설명하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내가 가장 이상하게 느낀 변화는 체중계 위에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도 그냥 살이 빠지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숫자가 내려가고 바지가 헐렁해졌으니 다이어트가 잘되는 중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체중보다 이상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달라진 건지, 내 몸이 달라진 건지 구분하기 어려운 변화들이었다.

변화는 체중계 위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변화는 체중계 위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 차이가 어디서 생겼는지 이해하는 데 꽤 오래 걸렸다. 이 연재는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순서로 쓸 생각이다.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에서 일어난 일뿐이다. 내가 40kg을 뺐다고 해서 당신도 그럴 거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다.

이 글의 시점에 대해

한 가지 미리 밝혀 둔다. 이 글의 장면과 숫자는 약을 맞던 76주 무렵에 써 둔 기록이다. 나는 2025년 3월 위고비로 시작해 마운자로까지 78주를 채웠고, 2026년 9월에 약을 끊었다. 약을 끊고 나서 식욕이 어떻게 되는지는 유지어터 게시판의 단약 일지에 따로 쓴다. 이 칼럼은 그 앞의 78주 이야기다.

다음 편은 내가 어떻게 127kg까지 갔는지부터다. 치킨 한 조각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게 되기까지, 나는 한 번도 그런 사람인 적이 없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어떠셨나요? 약이든 식단이든 운동이든, "어, 내가 좀 달라졌네"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댓글로 들려주세요.

신고하기

운영진이 확인한 뒤 처리해요. 신고한 사람은 알려지지 않아요.

신고 사유

개인 경험을 나눈 글이며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약 사용과 부작용은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

댓글 0

등록순

첫 댓글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