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교시가 끝나면 점심 도시락을 열었다.
아침을 굶고 온 것도 아니었다. 집에서 밥을 든든하게 먹었다. 그래도 그쯤 되면 도시락을 꺼냈다. 점심시간까지 기다려야 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먹고 싶었고, 가방에는 밥이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저녁 도시락을 먹었다.
그러고 나면 가방에 빈 도시락 두 개가 남았다. 밤까지 학교에 있어야 하는데 저녁밥을 벌써 먹어버린 셈이었다. 그렇다고 저녁을 굶지는 않았다. 그때가 되면 밖에 나가 분식을 먹으면 됐다.
나는 저녁밥을 미리 먹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점심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127kg까지 갔던 이야기를 하려면, 체중계보다 이 도시락부터 떠올려야 할 것 같다.
187cm 127kg, 남자 고도비만은 어떻게 만들어졌나많이 먹어도 괜찮았던 시절
한동안 나는 나를 설명할 때 이렇게 말했다.
평생 뚱뚱하게 살았다고.
오래 세 자리 몸무게로 살다 보니 그 전의 나는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중학교 3학년 때 키는 185cm, 몸무게는 80kg 정도였다. 운동부였고 전국대회에도 나갔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쯤 컸지만,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뚱뚱한 학생보다 운동하는 학생이 먼저 생각난다.
훈련은 힘들었다. 운동하다가 토할 만큼 몰아붙이는 날도 있었다.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도 힘든 줄은 알았지만, 운동은 원래 그런 건 줄 알았다.
먹는 것도 그랬다.
많이 움직였고 많이 먹었다. 한창 자라는 중학생이 밥을 잘 먹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 역시 밥을 얼마나 먹는지 따져본 적이 없었다. 훈련을 하고, 밥을 먹고, 다음 날 또 훈련을 했다.
그 생활에서는 내 식사량이 별문제 없이 맞아 들어갔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들어가 운동을 그만뒀을 때도, 밥까지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운동을 그만둔 건 분명히 알았다. 이제 훈련에 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밥을 먹을 때는 그 사실을 떠올리지 않았다.
어제 먹던 만큼 오늘도 먹었다.
저녁이 되면 또 저녁을 먹었다
고등학교에서는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아침에 가면 밤에야 돌아왔으니 집에서 도시락을 두 개 싸줬다. 점심에 먹을 것 하나, 저녁에 먹을 것 하나.
도시락에는 먹을 시간이 정해져 있었지만, 나는 그 시간을 잘 지키지 않았다.
아침밥은 꼭 먹었다. 어머니는 아침을 먹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만큼 아침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나도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는 게 익숙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가도, 도시락 두 개는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다 비었다.
점심 도시락과 저녁 도시락, 둘 다 오전에 사라졌다야간자율학습이 끝나 집에 돌아오면 야식도 먹었다.
지금 하루를 쭉 적어놓으니 많이 먹었다는 게 보인다. 아침밥을 먹고, 도시락 두 개를 먹고, 분식을 먹고, 집에서 또 먹었다.
그런데 그때는 하루치를 한꺼번에 보지 않았다.
학교에서 도시락을 열 때는 그 도시락만 생각했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었고, 집에 와서는 뭔가 더 먹었다. 앞에서 먹은 것까지 떠올리며 이번에는 그만 먹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 번에 하루치 식사를 차려놓았다면 나도 좀 놀랐을지 모르겠다.
몇 시간씩 띄워 먹으니 그냥 하루가 지나갔다.
키는 2cm, 몸무게는 40kg
중학생 때도 나는 많이 먹었다. 달라진 것은 먹는 양보다 생활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훈련하는 대신 교실에 앉아 있었다. 밤까지 학교에 있었지만 운동부 시절처럼 몸을 쓰는 하루는 아니었다. 키도 예전처럼 자라지 않았다. 중3 때 185cm였던 키는 고등학교 3년 동안 2cm 정도 더 컸다.
몸무게는 그동안 40kg이 늘었다.
졸업할 무렵에는 120kg 정도였다.
지금 80kg과 120kg을 나란히 놓고 보면 큰 차이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40kg이 한꺼번에 붙은 몸을 어느 날 갑자기 받은 게 아니었다. 그 몸으로 매일 학교에 갔고, 친구를 만났고, 밥을 먹었다.
몸이 커지는 동안 그 몸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키가 187cm이다 보니 주변에서는 덩치가 좋다는 말을 많이 했다. 어른들은 “장군감이네”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듣고 자란 내게 큰 몸은 걱정거리이기 전에 나를 설명하는 특징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 농담도 잘했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대학에 가서 친구를 사귀거나 연애를 하는 데 몸무게가 모든 것을 가로막는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살이 쪘다는 건 알았다.
다만 그 사실이 하루의 맨 앞에 와 있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불편해진 건 옷이었다
옷을 사러 가면 몸이 얼마나 커졌는지 좀 더 분명해졌다.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아도 입을 수 있는 크기가 없었다. 큰 사이즈를 파는 곳을 따로 찾아다녀야 했다. 옷을 고른다기보다 내 몸에 들어가는 옷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런데 이것마저 익숙한 불편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또래보다 키가 컸다. 살이 찌기 전에도 기장이 맞는 옷을 찾기 어려웠다. 남들은 쉽게 사는 옷을 나는 쉽게 못 사는 일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예전에는 길이가 모자랐고, 이제는 품도 모자랐다.
불편은 더 커졌는데 나는 비슷한 일로 받아들였다. 원래 나는 옷 사기가 힘든 사람이니까.
지금 돌아보면 살이 찌면서 생긴 불편까지 키가 큰 탓으로 넘긴 적이 많았다. 키 때문에 불편한 것과 몸무게 때문에 불편한 것을 굳이 나눠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교 1학년 때, 입대를 앞두고 받은 신체검사에서 127kg이 나왔다.
스무 살이었다. 내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갔을 때의 숫자다.
그 숫자를 봤다고 그날부터 식사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당장 큰일이 났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친구들과 잘 지냈고, 밥은 늘 먹던 대로 먹었다.
이제 와서 그때의 나에게 왜 그렇게 많이 먹었냐고 물으면, 무슨 특별한 이유를 대기는 어렵다.
운동할 때도 그렇게 먹었다.
운동을 그만둔 뒤에도 그렇게 먹었다.
예전에는 괜찮았던 양이 더는 괜찮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나는 몸무게가 한참 늘어난 뒤에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늘 하던 일이어서 살펴볼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을 127kg으로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2교시가 끝나면 도시락을 열던 학생이었다.
그 뒤로 여러 번 살을 뺐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쪘다.
다음 편은 운동으로 95kg까지 뺐다가 다시 120kg이 된 이야기다.
여러분은 살이 붙기 시작하던 때, 생활에서 무엇이 달라졌나요? 생활은 바뀌었는데 먹는 습관은 그대로였던 경험이 있으시면 댓글로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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