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한꺼번에 진단, 125kg의 건강검진
몸이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반대였다. 몸은 꽤 오래전부터 이런저런 방법으로 문제가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그 신호를 적극적으로 확인하지 않았을 뿐이다.

타이레놀을 생활용품처럼
가장 익숙했던 것은 두통이었다. 나는 두통이 잦은 사람이었다. 가끔 머리가 아픈 정도가 아니라 타이레놀을 생활용품처럼 가지고 다녔다. 집에는 기본으로 몇 통씩 사다 놓았고 차에도 하나, 사무실에도 하나를 뒀다. 어디에 있든 손을 뻗으면 진통제를 구할 수 있게 해놓고 살았다.
혈압이 높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다. 어머니 쪽 집안에 고혈압이 많았다. 가족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만성적인 두통까지 있었으니 나라고 예외일 거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혈압은 잘 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유도 단순하다.
보기 싫었던 것이다.
높을 것 같다는 생각과 실제 혈압계에 찍힌 숫자를 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막연히 '나 혈압 좀 높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동안에는 모르는 척할 수 있다. 하지만 160이니 170이니 하는 숫자를 눈으로 보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모른 척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 말고는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당뇨도 비슷했다. 갈증이 심했다. 그냥 물을 좋아해서 많이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물을 계속 찾았다.
소변을 보면 거품이 많이 생기는 것도 신경 쓰였다. 당시의 나는 그것 역시 혈당 문제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거품뇨 하나만으로 당뇨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쨌든 당시의 나는 내 몸에 뭔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사람은 의외로 많은 불편에 적응한다
생활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했고, 일을 했고,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생활했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놀러 다녔고 친구들도 만났다. 두통이 오면 타이레놀을 먹으면 됐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면 됐다.
사람은 의외로 많은 불편에 적응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이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두통과 갈증은 그런 것이었다.
2024년 11월, 국가건강검진
그러다 2024년 11월쯤 국가건강검진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일정 연령이 되면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으니 특별한 일이 있어서 병원에 간 것은 아니었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검진을 미뤄두었던 사람들이 몰리곤 하는데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때 내 몸무게는 125kg 정도였다.
검사가 끝나고 결과가 나왔다. 아래 숫자는 결과지를 다시 꺼내 보지 않고 기억으로 적는 것이라 기억에 따른 대략치다.
혈압은 160에 120이었다. 당화혈색소는 7.6%. 콜레스테롤 수치는 지금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의사가 고지혈증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정도로 기준을 넘어 있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그 숫자들이 완전히 뜻밖이었던 것은 아니다. 두통도 있었고 갈증도 있었으며 혈압과 혈당이 좋지 않을 가능성을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다만 막연히 알고 있는 것과 검사 결과지에 숫자로 찍혀 있는 것은 전혀 달랐다. 160에 120이라는 혈압과 7.6이라는 당화혈색소는 더 이상 모르는 척할 수 없는 숫자였다.
하나도 아니고 세 개였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쓰리 콤보였다.
그 숫자들을 보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마디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져야겠다거나 이제부터라도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식의 모범적인 다짐이 아니었다.
"좃됐네."
정말 그 생각부터 들었다.

'주의하세요'와 '당뇨입니다'는 달랐다
이전 건강검진에서도 수치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경고는 계속 있었다. 아직 진단까지는 아니지만 위험하다, 조금 더 올라가면 안 된다, 관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비슷하게 생각했다.
빼면 되지.
한번 95kg까지 빼본 사람이었다. 저탄고지로 25kg도 빼봤다. 살을 빼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았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필요하면 또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의하세요'와 '당뇨입니다'는 느낌이 달랐다. '혈압이 조금 높네요'와 160에 120이라는 숫자도 달랐다.
경고등이 세 개 동시에 빨간색으로 바뀐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스무 살이 아니었다. 마흔여덟이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아내가 있었고 아이들이 있었다.
죽는 것보다 무서웠던 것
그 순간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내 주변에는 심혈관이나 뇌혈관 문제로 큰일을 겪은 사람이 네 명이나 있었다. 그중 두 사람은 운이 좋았다. 낮에 일상생활을 하던 중 문제가 생겼고, 주변 사람들이 바로 이상을 알아차렸다. 119를 타고 응급실로 갔고 빠르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달랐다. 밤에 자다가 문제가 생겼다. 한 사람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다른 한 사람은 살아남았지만 벌써 여러 해째 요양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봤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그날 가장 무서웠던 것은 죽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죽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해야 할 일도 많다. 하지만 죽음보다 더 먼저 떠오른 장면은 내가 살아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병원비가 계속 들어간다. 가족 중 누군가는 병원을 오가야 한다. 간병해야 한다. 일상은 바뀐다.
돈의 문제만도 아니다. 가족 구성원 한 사람이 장기간 누워 있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의 삶까지 그 병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실제로 그런 가족을 봤다.
나는 그게 무서웠다. 내가 잘못되면 나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처음으로 그 생각이 현실적으로 들었다.
그동안 살을 빼야 하는 이유는 언제나 조금 멀리 있었다. 건강에 좋으니까. 옷을 좀 편하게 사고 싶으니까. 나이 들면 관절에 안 좋다니까. 혈압도 올라갈 수 있다니까. 모두 맞는 말이었지만 당장 오늘의 나를 움직일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이미 병명이 세 개 생겼다. 그리고 그 병명 뒤에는 내가 직접 본 사람들의 얼굴이 있었다.
원인은 비만이다, 살 빼라
내 건강을 봐준 의사는 친형이었다. 이 부분을 이야기하면 조금 특이하게 들릴 수 있다. 형은 내과 전문의이고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른 환자들이 의사에게 하기 어려운 말을 형에게는 편하게 할 수 있었고, 형 역시 나를 환자로만 대하지 않았다.
그날도 형의 설명은 간단했다.
원인은 비만이다. 살 빼라.
혈압은 가족력도 있고 이미 수치가 높으니 약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살을 빼더라도 혈압약은 오래, 어쩌면 평생 먹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반면 당뇨와 고지혈증은 체중이 줄고 수치가 좋아지면 앞으로 치료가 달라질 여지가 있으니, 결국 지금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체중을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운동 이야기도 나왔다. 예전의 나라면 '그럼 다시 운동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형은 지금 당장 운동으로 살을 빼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너도 이제 나이가 있다. 몸무게가 125kg인데 무리하게 뛰고 걷고 산 타다가 무릎이나 발목부터 나가면 더 골치 아프다. 일단 먹는 걸 조절해서 체중을 낮춰라.
90kg대 정도까지 내려가면 그때 운동을 시작하되, 유산소 운동으로 체중을 더 빼겠다는 생각보다는 근력운동을 해서 근육량을 늘리고 유지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낫다고 했다. 물론 이건 그날 형이 내 몸을 보고 나에게 한 말이다. 다른 사람의 몸에도 같은 순서가 맞는지는 내가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묘한 기분이었다. 젊었을 때는 살을 빼겠다고 운동부 시절보다 더 운동했는데, 이제는 살을 빼려면 운동부터 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어쨌든 해야 했다.
병원에서 나와 차에 탔다. 차 안에는 마시던 커피가 있었다. 그 커피 이야기부터 다음 편에 쓴다. 연재 순서는 목차 글 rediet.net/p/7 에 모아 두었다.
검진 결과지에서 '주의'가 아니라 '진단'이라는 말을 처음 본 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먼저 들었는지 댓글로 들려주세요. 저처럼 몸이 보내던 신호를 몇 년씩 모른 척한 경험이 있다면 그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개인 경험을 나눈 글이며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약 사용과 부작용은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